을 좌우할 새로운 불행이 될 것만 같았다. 첫아들하고 네 살 터울로 운암댁은 둘째아들 종술이를 얻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 둘을 나란히 낳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운암댁은 임씨 가문의 며느리로서 이제 구실을 다한 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그것이 얼마나 건방진 생각인가를 갑자기 깨달으면서 자신의 자발머리없음에 금방 후회를 느꼈다. 자신의 행복한 처지를 시샘하는 어떤 강력한 힘이 있을 것만 같아 늘 자식 자랑을 삼가고 스스로 근신하는 생활을 했다.
다행히도 남편은 다시 마음을 잡고 불구의 오른손일 망정 열심히 놀려 자작농으로서의 살림을 실속 있게 꾸려나갔다. 적어도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집안에서 아무런 불길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6·25 사변……
그것은 두 번 다시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체험이었다. 그것이 결국 운암댁한테서 소중한 것의 전부를 말짱 휩쓸어가버렸다. 완장과 함께 찾아와서 완장과 함께 물러간 운암댁의 6·25는 그것이 한 번 떠오를 적마다 반드시 침을 세 번씩 뱉고 발로 땅을 구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엄청난 재앙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또다시 되살리게 만드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운암댁에게 없었다.
이곡리 쪽에서 양죽리 쪽으로 뻗은 제방의 한귀퉁이에 도시의 방범초소를 닮은 감시소가 세워졌다. 손목 굵기의 각목 기둥에다 베니어 합판을 뚜덕뚜덕 붙여 순전히 날림으로 지은 것이긴 하나 종술은 상자곽 모양의 그 볼품없는 거점에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불만이 다 무엇이나. 비와 햇볕, 그리고 추위만 웬만큼 가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는 아주 만족이었다. 피곤할 때는 다리를 약간 꼬부리고 옹색하게나마 드러누울 수 있게끔 안에다 마루도 깔아놓았다. 배고플 때는 라면이라도 간식으로 끓여 먹을 수 있게끔 익삼 씨는 등산용 석유 버너까지 비치해주었다.
정히나 한 가지 불만을 들라면 그것은 감시소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솜씨 거칠기로 소문이 난 동네 목수 공씨도 연장궤를 메고 돌아가버리고 해질녘의 대숲둑 위엔 익삼 씨와 종술 두 사람만 남았다. 방금 완성된 감시소를 눈여겨보다 말고 종술이 불쑥 입을 열었다.
“성님, 조께 야헌 것 같지 않소?”
“명색이 그래도 감시손디 자네 눈에는 이 정도가 야허게 비치는가? 이삼 일 내로 흰 뺑끼를 구해다가 단장시켜놀 작정인디. 그때는 너무 난허게 생겼다고 타박헐 사람이구만.”
익삼 씨가 은근히 핀잔을 주었다.
“감시소가 아니라 요것 말입니다요.”
종술은 멋적은 듯이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왼팔을 슬쩍 가리켰다. 하얀 바탕에 ‘감시’라는 붉은 글씨가 박힌 비닐 완장이 어느새 그의 팔에 채워져 있었다.
“정식 감시원이란 것만 사람들한티 알리면 그것으로 족허지, 자네가 완장 잘생기고 못생긴 것 따져서 무신 소용인가?”
익삼 씨는 거듭 핀잔이었다. 작년 늦가을까지만 하더라도 낚시질을 말리다가 종술이한테 업어치기를 당해서 꼼짝없이 물구덩이에 처박히던 사람치고는 요 며칠 새에 많이 파격이 되어 있었다.
“에헤이 성님도 참……. 아, 어째피 차는 완장, 이왕지사 좀찮은 색깔로 곤쳐서 덜 좋을 일이 뭣이라고 그러시오? 그러찮어도 내가 니알 중으로 솜리에 냉겨올 일이 있는디……”
“덜 좋을 일도 더 좋을 일도 나는 뭣인지 모르겠네만, 새 완장 값을 자네 주머니서 빼낸다면사 즘잖게 곤쳐서 나쁠 것도 없지.”
결국 고치기로 합의가 되었다. 종술은 순전히 완장 하나 다시 만들려는 목적으로 자기 비용을 들여서 이리시에 다녀올 작정이었다. 하얀 바탕에 빨간 글씨가 정말로 야하다거나 난해 보여서가 아니고 그 정도로는 뭔가 미흡한 감이 들기 때문이었다. 멀리서도 사람들 이목을 바짝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사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야해지고 난해질 필요가 있었다. 종술은 노란 바탕의 파란 글씨를 세 개의 빨간 가로줄로 장식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 고치는 김에 아예 글씨도 어쩐지 약한 느낌을 주는 ‘감시’보다는 좀더 권위가 있어 보이는 ‘감독’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참말로 정신 바짝 채리고 순시를 잘 돌아야 되네. 이곡리나 양죽리 쪽 물가에 자리잡는 낚시꾼쯤이사 감시소에 앉아서도 막을 수 있겄지마는, 저짝편 법계리 후미끼리는 어림도 없어. 그러고 낚시꾼들이사 또 괭기찮어. 그것들이 한나절씩 앉어봤자 잡으면 일매나 잡겄는가. 문제는 투망질이네. 투망질이나 약을 풀어서……”
며칠 동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되풀이해온 이야기를 익삼 씨가 다시 길게 늘어놓으려 하자 종술은 자존심이 딸꾹질을 시작하는 표정이었다.
“아따. 그런 염려는 두었다가 성님네 남새밭에 밑거름으로나 주시오.”
“종술이 자네 내 말이 어째 시답잖게 들리는가?”
“시답잖기는요, 하도 여러 번 들으니깨 쪼깨 거시기혀서……”
“뭣이여? 여러 번 아니라 여러 백 번이라도 들어서 새길 소리는 귓구녕 소제허고 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