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학교가 파해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박충서한테 이끌려 집부터 먼저 들르지 않고 곧장 소라단으로 직행했다. 전쟁 전에는 어른들 틈에 끼여 몇차례 와본 적이 있었지만 전쟁 후에 소라단 땅을 밟기는 그것이 초행길이었다. 그만큼 소라단이란 곳은 바로 지척지지에 있으면서도 내게는 좀처럼 가까이할 수 없는 머나먼 땅이었다.
울울창창한 솔숲 속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좁쌀을 한됫박 뒤집어쓴 듯 온몸에 소름이 좍 돋아났다. 첫닭이 울기 전에 미처 무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원귀 한둘쯤은 숲속 어딘가에 숨어 우리를 훔쳐보며 해코지할 기회를 노릴 성싶었다. 하지만 박충서는 나하고 달랐다. 그는 거추없이 신바람이 나서 숲속을 사면팔방 헤집고 다니며 키꺽다리 늙은 소나무 등치를 손으로 어루만지기도 하고 콧방울을 벌룽거리며 숲 냄새를 킁킁 맡아보기도 했다. 일차 정찰을 끝낸 그는 풀밭 위에 벌렁 드러누워 팔베개를 하고는 암녹색 나뭇가지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합쳐 가뿐하게 떠받치고 있는 푸른 하늘을 일삼아 올려다보았다.
“사리원 우리 고향 동네 뒤쪽에도 요거랑 똑같은 산이 있어.”
충서가 혼잣말 비슷한 가락으로 중얼거렸다.
“숲 냄새도 여기 소라단하고 똑같아.”
한바탕 또 양쪽 콧방울을 벌룽거리고 나서 그는 먼 하늘을 향해 아련한 눈길을 올려 보냈다.
“고향 동네 뒷산 같은 소라단에 누워 있으니까 우리 엄마 아빠 얼굴이 하늘을 막 떠다닌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그 박충서가 아니었다. 여태껏 내가 만나본 여러 명의 박충서 가운데서 가장 어리고 나약한 박충서였다. 그를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어 나는 슬며시 하늘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소나무들 틈새로 뚫린 파란 하늘 바탕을 가로질러 새하얀 솜구름덩이가 북쪽으로 길을 잡아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인천 부둣가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어. 아무리 기다려봐도 다음 피난선은 오지 않았어. 우리 엄마 아빠는 그때 벌써 돌아가신 거야.”
잠깐의 흔들림을 견디고 나서 그는 어느새 내가 잘 아는 씩씩한 박충서, 사나이 중의 사나이 바로 그 박충서로 되돌아와 있었다.
“인제 나한테 남은 식구는 큰누님 하나밖에 없어.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우리 옥서누님을 꼭 찾아내고 말 거야.”
묵은 결심을 새 결심인 양 다시 한번 사납게 다지고 나서 박충서는 몸을 발딱 일으켜세웠다. 기운을 되찾은 그는 유난히도 부산을 떨었다. 소나무가 우거진 멧갓 속 여기저기를 쉴새없이 헤집고 다니며 남아도는 기운을 온통 보물찾기에 쏟았다. 흉흉한 소문 속에 등장하는 각종 불발탄들이 그가 찾는 보물이었다. 한나절은 족히 멧갓 속을 뒤져 그가 겨우 찾아낸 것은 찌그러진 권총 탄피 한개가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알량한 전리품을 호주머니 안에 알뜰히 챙기며 마냥 흡족해했다.
그날 이후로 소라단은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다. 박충서와 함께 자주 찾게 된 소라단은 어느새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솔숲 우거진 소라단의 품안에 몸을 맡기고 있는 동안 그는 이북의 고향 동네와 부모님 그리고 큰누님에 관한 이야기를 더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지칠 줄 모르고 오로지 보물찾기에만 골몰할 따름이었다. 허탕을 치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때로는 그토록 소원하던 보물을 찾아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