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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윤흥길 단편소설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115-118p 발췌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표지

순경이 재차 다녀간 날 밤에 우리 집 문간방에서는 이상하게도 세 살짜리 아이의 칭얼거림이 그치지 않았다. 전에는 없던 일로 영기가 자주 잠을 깨는 눈치였고 이부자리에 지도를 그렸다고 야단을 맞는 모양이었다. 영기의 울음 소리가 웬만큼 높아질 때까지는 가만 내버려두다가 안방에까지 훤히 들릴 정도가 되면 권씨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제꺼덕 천장을 타고 내 귀에까지 건너왔다. 그러면 그럴수록 영기 녀석은 울음 속에 세 살답지 않은 보복 의지 같은 걸 담아 비수처럼 휘둘러대는 것이었다. 급기야는 아내를 비롯한 우리 가족 전부가 잠을 깰 지경이 되었다. 저렇게 처마끝을 들고서는 애를 달랠 생각도 않는다고 아내가 졸음겨운 소리로 투덜거렸다. 아닌게아니라 권씨 부인은 한마디 말이 없었다. 권씨네가 이사온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권씨 부인이 하다못해 아야 소리 한마디 하는 걸 듣지 못했다.

“나가버릴까부다, 차라리 아빠가 멀리 나가버리고 말까봐!”

부르짖음에 가까운 권씨의 비통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어린것의 귀에도 그 말만은 놀라운 효험을 보인 모양이었다. 자지러지던 울음이 갑자기 뚝 그쳤다. 그래도 여전히 빨랫줄마냥 뻗으려는 울음의 꼬리를 아이는 도막도막 잘라 숨돌릴 겨를 없이 삼키느라고 자주 사레가 들렸다.

아침이 되어보니 권씨는 또 구두를 닦고 있었다. 구두 닦기에 권씨는 여느 날보다도 유난히 더 열심이었다.

“간밤엔 죄송했습니다.”

권씨가 슬리퍼를 신은 내 발을 상대로 정중히 사과를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권씨의 새삼스러운 사과가 내 귀엔 어쩐지, 간밤의 내 솜씨가 과연 어떻더냐고 묻는 성싶게만 들려 두고두고 떨떠름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가정 방문 주간이 이틀째로 접어드는 날이었다. 학생 하나를 향도로 세워 ‘별나라’ 부락에 거주하는 학부형들을 차례로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나는 때마침 어느 학교 신축 공사장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콘크리트 골조를 비잉 둘러 얼기설기 엮어 지른 비계가 머리 위로 높다랗게 보였고, 시멘트 벽돌을 등에 진 사내들이 흔들거리는 널다리를 줄지어 오르내리고 있었다. 모두들 걷어붙이고 벗어제친 몸들이 무척이나 탐스럽고 강인해 보였는데, 그 중에서 유독 한 사내가 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흡사히 널벅지들 틈에 낀 간장종지로 왜소해가지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기는 것이었으며, 그토록 험한 일을 하면서 놀랍게도 완연한 사무원 복장이었다. 비계 바투 밑까지 접근해서 사내의 얼굴을 재삼 확인한 다음 나는 이렇게 외쳤다.

“권선생, 거기 있는 게 권선생 아니우?”

그 순간 벽돌장 하나가 똑바로 내 머리를 겨냥하고 무서운 속도로 낙하해왔다. 잽싸게 몸을 피했기 때문에 다치지는 않았다. 서둘러 널다리를 내려온 권씨가 내 앞에 섰다. 정말 권씨였다. 그의 얼굴에 석고처럼 굳게 새겨진 경악을 보고 나는 그가 나를 죽일 작정으로 그러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는 전신이 땀과 먼지 범벅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베이지색 와이셔츠 위에 받쳐입은 춘추용 해군기지 잠바는 작업에서 얻은 오손과 주름으로 말씀이 아니었다. 그러나 구두만은 여전해서 칠피 가죽에 공들여 올린 초콜릿빛 광택이 권씨의 가장 권씨다움을 외롭게 지켜주고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죠?”

마치 내가 자기 행방을 일부러 수소문해서 찾아오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는 물었다.

“학생들 가정 방문을 다니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그는 가득 의심을 담은 눈으로 나와 내 반 학생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증거까지 손에 쥐어주는데도 그의 의심이 쉬이 풀릴 기색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서둘러 신축 공사장을 뒤로해버렸다.

밤이 꽤 늦어 권씨는 귀가했다. 그는 문간방을 거치지 않은 채 내가 들어 있는 안방으로 직행해와서 두 홉들이 소주병 하나를 푹 꽂는 기세로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미 어지간히 취해 있었다.

“이래봬도 나 안동 권씨요!”

피곤에 짓눌렸던 몸뚱이가 이번엔 술에 흠씬 젖어 갱신 못 할 지경인데도 목소리만은 제법 또렷했다.

“물론 잘 아시리라 믿지만 안동 권씨 하면 어딜 가도 그렇게 괄시 안 받지요. 오선생은 본이 해주던가요?”

내 구두가 자기 구두보다 항상 추저분하고 또 단벌임을 매번 확인하듯이 이참에는 성씨로써 일종의 길고 짧음을 대볼 작정인 듯했다. 나는 그저 웃어보였다. 웃으면서도 사람 좋게 보이려는 내 노력이 취중을 뚫고 그의 흐트러진 뇌수 깊이에까지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랐다.

“권선생, 많이 취하신 모양인데 얘긴 우리 나중에 하고 들어가서 쉬시죠.”

팔짱을 낀 채 문간방 너머 마루에 잔뜩 부어터진 얼굴로 서 있는 아내를 흘끔흘끔 곁눈질하면서 나는 권씨를 편히 쉬게 하려는 생각이 순전히 자발적이며 선의에 찬 것임을 행동으로 강조해 보였다. 권씨가 내 선의를 홱 뿌리쳤다. 그는 반쯤 강제로 일으켜졌던 엉덩이를 도로 털썩 주저앉히더니 병뚜껑을 이빨로 물어 단숨에 깠다.

“전과자허군 벗하기 싫다 이겁니까? 허지만 어림두 없어요. 오늘은 내 기필코 헐 말 다 허고 물러가리다.”

“전과자라구요?”

눈이 벌어진 입만큼이나 되어가지고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냉큼 뛰어들어왔으므로 아내의 음성은 자연히 깜짝 반기는 투와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결코 반기는 투가 아님이 다음말로써 곧 분명해졌다.

“원 세상에, 세상에나! 방금 전과자라구 하셨죠? 지끔 두 분이서 누구 얘길 하시는 거예요? 세상에, 세상에나......”

“아주머닌 모르고 계셨습니까? 오선생이 얘기하지 않던가요? 바루 제 얘깁니다. 왜요, 제 눈빛이 어쩐지 이상해 보입니까? 아주머니 문짜대로 전과자허고 사람―그렇지, 사람이지―사람하고 이렇게 가차이 앉은 게 신기합니까?”

뛰어들 때와 똑같은 기세로 아내는 냉큼 몇 발짝 물러섰다. 빤히 올려다보는 권씨 앞에서 아내는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단박 고분고분해졌다. 권씨가 앉으라면 앉고 들으라면 듣는 자세를 취했다.

“모기 앞정갱이 하나 뿌지를 힘도 없는 놈입니다. 뭐 조금도 겁내실 거 없습니다. 편안한 맘으로 내외분이서 제 얘기 들어주십시오. 잠깐이면 됩니다.”

그때까지도 나는 적당히 권씨를 구슬려 문간방으로 돌려보낼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모기 앞정갱이 하나 어쩌지 못하는 주제에 감히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똑똑 부러뜨린 그 불가사의가 다소 풀릴 것도 같았다.

“아마 프로이트가 한 말일 겁니다.”

그는 병째 기울여 소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성자와 악인은 종이 한 장 차이랍니다. 악인이 욕망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성자는 그것을 꿈으로 대신하는 것에 불과하답니다.”

그가 또 소주병을 기울이려 했으므로 나는 병을 빼앗은 다음 아내를 시켜 간단한 술상을 보아오게 했다.

“내 입장을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서 성현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프로이트한테 커다란 위로를 받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내가 전과자가 될 줄 미리 알구서 일찍이 그런 위로의 말을 준비해둔 성싶거든요.”

술상이 들어왔다. 저녁에 먹다 남긴 돼지찌개 재탕에다 끼니때마다 보는 밑반찬 두어 가지가 전부였다. 우리는 일차로 주거니받거니 했다. 그는 말했다.

“물독에 빠진 생쥐처럼 잔뜩 비를 맞던 저 화요일이 있기 전까지 나 역시 오선생 이상으로 선량한 시민이었지요. 물론 내 안사람도 아주머니만큼이나 착하고 선량했을 겁니다. 불만이 있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기껏 꿈속에서나 해결할 뿐이지 행동으로 나타낼 줄은 몰랐으니까요.”

아내더러 술을 더 사오도록 했다. 술이 들어갈수록 그는 더욱 창백해졌으며, 너름새가 좋아졌다. 술이 그를 지껄이도록 시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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